삶이 고이는 방, 호수(함수린)
어떤 이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공감과 힐링을 얻은 책
작년 이맘때 쯤(보다 더 지나, 더워지기 시작한 어느 초여름 날), 독립서점에서 산 예쁜 책이다. 예쁘다는 것의 기준은, (1) 표지가 예뻤고, (2) 제목이 예뻤고, (3) 분위기가 예뻤다는 것에 있었다. 당시에 이 책을 포함해 독특한 분위기의 책을 두세 권 정도 사가지고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이 책만 한 번 펼쳐보고선 여태 읽어보질 않았다.
다른 책들은 내부가 시원시원하게 생겼는데, 이 책은 유독 빽빽한 줄글로 보여서 엄두가 안났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 겉모습만으로 책을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증명하듯, 너무 재미있어서 이틀만에 (그것도 잠들기 직전 30분 정도와 그 다음날 출퇴근길에) 다 읽어버렸다.
가장 좋았던 점은, 작가의 솔직함 덕분에 이 책은 공감과 힐링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 했던 기숙사 생활을 시작으로, 대학교 때의 자취 경험 두 번, 교환학생 한 번, 취준생 때 고시원 경험 한 번, 그리고 취업해서 독립해 사는 지금까지, 희한하리 만큼 집에서 나가 살게 된 경험이 많았던(특히 많은 곳을 옮겨다녀 보았던) 나로서는, 바깥(?) 생활이 주는 다양한 희노애락을 잘 알고 있다. 작가의 경험 중 몇 가지 포인트들에 더 공감을 잘 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
고시원 방이 너무 좁고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옆방의 통화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린 덕분에 옆 방 사람이 무슨 상황에 놓여 있는지까지 알게 되었다던 에피소드. 불편하지만 장점도 있는 공용 화장실. 서로 눈치보며 타이밍 맞추어 들락거려야 하는 공용 주방. 다른 사람의 세탁물에 내 옷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 공용 세탁기. 여럿이 한 집을 구해 같이 살면 비용적으로 효율적이지만, 부대끼며 살아야한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암묵적으로 서로 모른척하며 살 수 있는 1인 자취를 택한 일. 집에서 어머니가 보내주는 반찬이 너무 많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하기도, 죄책감을 가지기도 했던 일.
작가가 겪었던 에피소드들 중 인상적이었던 내용들이다.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솔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마치 일기를 써내려가듯 자신의 삶의 자취를 남겨 준 작가 덕분에 간만에 큰 여운이 남는 독서를 하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