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데모는 반드시 박살난다! (feat. 데모의 법칙)
내가 control할 수 없는 것들은 항상 실전에서 나를 못살게 군다.
수백 명이 듣고 있는 온라인 세션에서 스피커로 발표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목소리가 잘 안들려요'라는 피드백이 하나 올라온다. 그리고 같은 피드백이 또 올라오고 또 올라오고, 수 십명이 같은 피드백을 주기 시작한다. 이건 청중 쪽이 아니라 내 쪽에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나는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 그렇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철저하다 못해 넘치도록 준비를 하는 편이다. 이런 저런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하면서 말이다. 특히나 나는 무언가 발표를 할 때면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고, 내 머릿속에 있는 내용을 다른 사람의 머릿속으로 복사해서 넣어주는 과정을 즐겼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대로, 내가 알고 있는대로, 그 자체를 그대로 사람들에게 복사해주자는 마음으로 발표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것을 그대로 설명하면 절대 안되고 청자의 수준까지 고려해서 말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으로 발표 준비를 하다 보면 같은 리허설만 혼자 스무 번을 진행할 때도 있다. 일일이 세어 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무언가를 적으면서 리허설을 할 때가 있는데, 똑같은 내용이 스무장 정도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완벽'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는, 애초에 머릿속에 상상한 대로만 진행될 수가 없는 종류의 발표들이 있다. 이런 종류의 발표들이 요즘의 나를 굉장히 힘들고 지치게 하며, 때로는 회의감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내가 스피커로서 적절한 사람인가? 내가 정말 발표를 좋아했던가?' 하는 종류의 회의감 말이다. 그 첫 번째가 'interactive한 발표(청중과 스피커가 따로 정해져 있다기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며 만들어 나가는 세션)'이고 그 두 번째가 'demo 세션'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demo 세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내가 하는 업무와 관련해서, 방금 전에 막 끝낸 세션을 포함하여 '데모'를 보여야 할 일이 대략 다섯 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금 전 세션을 제외하고는 모든 데모가 성공적이었다. 상당히 낙관적인 상황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방금 전에 마친 데모가 그동안 했던 데모 대비, 청중이 수십에서 수백 배 가까이 많았던 데모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렇게, 데모의 법칙은 항상 중요한 순간에 작동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데모 세션을 마칠 때쯤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과 함께 스스로의 만족감과 성취감으로 마무리를 해오던 사람이라, 처음으로 마주친 이런 불상사가 매우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아무리 데모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한들,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번에 겪은 이 '사고'가 사전에 대비할 수 있는 종류의 사고였을까?
수백 명이 듣고 있는 온라인 세션에서 스피커로 발표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목소리가 잘 안들려요'라는 피드백이 하나 올라온다. 그리고 같은 피드백이 또 올라오고 또 올라오고, 수 십명이 같은 피드백을 주기 시작한다. 이건 청중 쪽이 아니라 내 쪽에서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심지어 이젠 화면조차 안 보인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딱 두 개다. 툴에 재접속하기. 그리고 컴퓨터 재기동하기. 보통은 첫 번째에서 해결이 된다. 그러나 데모의 법칙은 녹록치 않다. 툴에서 빠져나왔는데 재접속이 되지를 않는다. 결국 컴퓨터 재기동 선택지까지 가게 된다. 이럴 때에는 재기동도 오래 걸린다. 그렇게 속으로 식은 땀을 줄줄 흘려가며 재기동을 하지만, 역시 잘 안 되어야 진정한 데모의 법칙!
그렇게 아까운 청중의 시간만 10분을 빼앗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는 스피커 권한을 다른 스피커에게 넘겨 주어야 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까먹고, 민폐는 민폐대로 끼친 셈. 이쯤에서 다시 되짚어 본다. 내 데모는 어떤 준비가 미흡했을까? 과연 이 사고를 정말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번 사건의 문제가 네트워크였던 거라면, 인터넷이 빵빵한 환경을 사전에 선택했으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것으로 해결이 되었을까? 아마 네트워크의 문제가 없었다면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렇다. 데모의 법칙은 애초에 내가 컨트롤하려고 들 수가 없다. 그 어떤 최악의 상상을 해 가며 갖은 수를 써서 막으려고 해도, 데모의 법칙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거다. 내가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내가 생각지 못한 요소가 나의 데모를 망친다.
당신의 데모도 반드시 박살난다. 이것이 당신이 데모를 준비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데모의 법칙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딱 한 가지이다.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 당황하지 말기. 데모 주최자가 당황을 하기 시작하면 그 세션은 무너지지만, 주최자가 의연하게 대응하면 데모만 무너질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 이 사고는 데모의 법칙이라는 것을. 그러니 데모의 법칙이 당신에게 찾아온 순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고 태연하게 대처하도록.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