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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 국내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 (심너울)

by twfnm67 2022. 2. 2.

 이 소설은 내가 읽어 본 인생 첫 SF이다. 사실 예전에 다른 SF 작품을 도전해 본 적이 있지만, 내 기억으로는 읽다가 중도포기를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SF는 생소하고 낯설고 약간의 도전정신이 필요한 장르이다.

 여전히 SF는 힘들다. 조금 벅차다.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문장들도 있었고, 무엇보다 '간헐적 독서'(?)가 불가능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득이하게 이 책과 다른 책을 병행하면서 읽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하루걸러 하루 혹은 그 이상 며칠씩 걸렀다가 다시 잡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전 내용의 흐름을 상기하느라 애써야만 했다. 내 생각에 이 소설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소설인 것 같다. 신록, 리원, 하레뮐, 알푸릴, 연여인, 연다현, 서나루, 서소원, 서지아, 서지하, 서윤안, 혜린, 아리. 이 책의 등장인물들 중 기억에 남는 인물들만 우선적으로 나열해 보았다. 이름이 정말 특이하고도 서로 비슷한 이름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책을 쉬었다가 다시 읽을 때는 이 인물들이 각각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배양인과 잉태인. 이런 말은 생전 들어볼 일 없는 낯선 용어들이지만, 소설은 배양인이 무엇이고 잉태인이 무엇인지부터 알려주는 친절함이 없다 - 그렇기에 매력적이다- . 때문에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사이에서 '인간'이라는 용어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나의 의무였다. 

 다양한 지점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 '학습', '심리'의 영역을 '데이터' 처리의 과정으로 묘사한 지점이다. 현실 세계에 대입해보면 아마 인공지능이나 로봇 정도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들이 경험하는(?) 감정이나 학습의 영역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데이터 주입과 동기화를 거쳐 스스로 업데이트가 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과부하와 초지능의 감각을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책을 꽤 즐겨 읽고 다양한 장르를 접해 본 사람으로서, 내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는 '댄 브라운'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끔찍이도 줄글을 싫어하고 독서를 멀리 하던 나의 성향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책은 '정말 재밌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단 한 권의 소설 속에서도 온갖 종류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면 예술, 과학이면 과학, 종교면 종교. 댄 브라운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하나의 소설을 완성시킨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라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댄 브라운'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SF와 팩션은 아주 다른 장르이지만, 매우 밀접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책 속에 등장하는 배경, 인물, 사건을 아울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르의 지식과 그것을 아우르고 버무리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독자로서 어떤 책을 읽을 때, 이 책이 정말 '정성들여 만들어진 책이구나'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재미있었을 뿐만 아니라, 읽는 내내 독자로서 존중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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