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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설 | 국내

훌훌 (문경민)

by twfnm67 2022. 4. 6.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입양 가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내가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때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학여행을 가서 진실게임을 하던 도중, 같은 반 친구가 사실 자기네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어린 마음에 그 친구가 불쌍하기도 했고, 혹시나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감히 걱정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일은 진실게임에서 무게 잡고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불쌍히 여길 만한 일도 아니다. 어떤 가정에나 나름의 사정이 있고, 어떤 가족은 우리 가족과 다른 생김새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지 그 때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가족도 조금은 특이한 가족이라는 걸 깨달았던 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마냥 행복하고 화목하기만 한 가족인 줄 알았던 나도, 대학생이 되고 나니 가족 내의 현실적인 사정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너무 어려서, 고등학교 때는 가족과 따로 살아서 보지 못했던 식구들 한 명 한 명의 삶이 현실로 다가오고 몸으로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직 입양은 나에게 또 하나의 먼 이야기였던 것 같다. 세상에는 입양 가정도 많고 그만큼 입양아도 많을 텐데 내 주위에는 과연 한 명도 없던 걸까, 아니면 그들도 유리처럼 세윤이처럼 감추고 살아가는 걸까.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혹여나 독자들로 하여금 입양 가정에 대한 잘못되거나 편견어린 시선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처럼, 나도 입양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입양아가 아닌, 이 책 속에 있는 유리와 연우의 삶을 들여다고자 한다. 

 며칠 전 어떤 유명한 인강 강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아주 굴곡진 학창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소위 업계 일타강사로서 연 소득이 몇 백억씩이나 된다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 강사의 말에 의하면, 인생이 아주 시련의 연속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지병을 앓고 있었으며, 삼자매 중 막내였는데 언니들과의 문제도 겪었다고 한다. 가난과 질병과 가족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차마 강의실에서는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기억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을 포기할 생각으로 옥상에 올라갔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유리와 연우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강사의 삶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텐데,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들의 일상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다니. 새삼 내가 얼마나 '훌훌' 가벼운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당장 나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떠맡아야 할 게 더 있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무게감일 것이다. 이건 당장 연우라는 동생이 생겨 버린 유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유리를 입양했던 서정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서정희의 친부이자 유리를 책임지며 살아가는 유리 할아버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했던 서정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그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 상황 자체가 너무나 눈물겨웠다. 본인이 너무 힘들고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지도 못하는 환경 속에서, 별 수 없이 자신보다 어리고 연약한 존재를 껴안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외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인생은 책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책이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이 많다는 것을 안다. 한편으로 나는 요새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는가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당장 생존에 관련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의 고민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면서 세상 심각한 고민이 있는 사람처럼 지냈던 요즈음의 나날들에 대해 반성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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